하지만 최근에 우리사회에 일어난 살인예고는 이러한 SNS의 순 기능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더 보여주는 것 같다. 물리적인 제약을 뛰어넘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관계를 표현하는 수단인 ‘좋아요’와 댓글 ‘반응’이 수단을 그 자체로 아닌 목적이 된 것이다. 이는 극단적인 경우로 생각될 수 있지만, 돌이켜보면 SNS를 통해 가짜 명품을 진짜인 것처럼 올려 이슈가 되었던 일련의 사건들도 ‘카푸어’도 타인의 반응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양상이 바뀌었을 뿐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이러한 타인의 반응은 반복적인 강화를 통해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대표적인 SNS의 중독적 사용을 인정하며 페이스북, 트위터 중독 장애(facebook twitter addiction disorder)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과 방법은 돈이 되었습니다. 결국 난해한 방법, 특이한 표현방법, 이질적인 방식, 새로운 개념 미술은 가치를 표현하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입니다. 인간이 어떠한 방법으로 인식하는 ‘것’ 또는 새로운 개념을 종이(캔버스)에 담아 낸다는 ‘것’ 이것이 미술의 금액적 가치를 높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미술 역사의 배경을 알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과, 작품을 수집하고 투자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미술은 편향적이게 바뀌어 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추상미술, 포퓰리즘 아트, 개념미술, 설치 미술 등이 등장하여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주목 받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잭슨 폴록’은 캔버스의 물리적인 ‘힘’을 담아 냈다라는 이유로 그의 작품은 경매에서 높은 금액으로 팔렸습니다.
기술을 배워서 직장을 찾고는 싶은데 경제적 여유가 없는 나에게 웹개발자 국비 교육 과정은 메마른 땅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이 광고를 통해 서울 강남에 있는 it학원에 상담을 신청하였다. 그리고 컴퓨터 공학과를 나와 웹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친한 친구에게도 따로 전화를 하였다. 친구를 통해 들은 얘기는 컴퓨터 공학과를 나오지 않고 프로그래밍 쪽으로 진로를 잡는 건 어렵지만 나와 같은 비전공자 출신은 웹개발자로 직업을 삼고 충분히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3개월의 JAVA 언어 공부 과정과 11개월의 국비 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방송작가와 스타벅스 바리스타였다. 그 외에 편의점 아르바이트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등 많은 종류의 일을 해보았다. 이런 경험이 있는 내가 과연 개발자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믿음 생활을 하면서 내려놓음의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곤 한다. 나의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순종했던 경험보다는 상황에 끝까지 밀려서 어쩔 수 없이(?) 강제적인 순종을 하며 내 자신을 내려놓았던 경험이 많았던 것 같다.
일례로 교회를 처음 나가게 되었던 사건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갑자기 턱이 잘 벌어지지 않아 아팠는데, 치과에 가서 상담받아 보니 수술하면 나을 수도 있고 안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게 무슨….) 아무튼 이 일로 아버지가 교회에 가면 낫는다고 하길래 의심이 많았던 나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어 교회에 가게 되었다. 마침 목사님이 신유의 은사가 있으신 분이었고, 찬양하면 낫는다는 말씀에 그날로 성가대원이 되어 약 한 달여 만에 완치가 되었다. 이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지만, '아, 무언가가 있구나….'를 알게 된 계기였다.
국내 유행의 획일화는 한국인들의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와 획일화된 교육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사회는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한다. 이에 적응하기 위해 누군가 제시하는 정답을 따르려는 태도가 불확실성을 줄이고, 빠른 성장에도 도움이 됐지만, 이를 통해 대중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없애고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부족한 성숙도의 단면 역시 드러나게 되었다. 획일화된 교육, 기업 문화, 건축 등에 대한 각 분야에서의 비판의 목소리들이 높아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더욱 성숙한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방식들을 취해야 할 지에 대해 깊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저는 이런 생각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인생의 목표가 주어지고, 어떤 일들을 열심히 할 동력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복수는 나의 힘"이라는 유명한 영화의 제목 처럼 타겟을 정해두고 어떤 일을 열심히 하면 그 일의 능률과 명료함은 아주 높기 마련입니다. 종교개혁자들도 당시 로마 카톨릭 교도들을 적으로 상정해두고 활동을 했기에 놀라운 결과물들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놓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불행한 일에 집착을 많이 하게 되면, 정작 내 안에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이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일하고 계신 하나님에 대한 눈이 가리어 질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인생에서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그 분의 영광만을 드러내기 위한 그 찬란함이 우리가운데 사라지기가 쉽습니다. 통찰이 가득했던 말씀 묵상도 흥미를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