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일생에 한 번 할 수 없는 타이타닉 관찰이라는 희소성을 돈주고 사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생명을 담보로한 모험을 떠났다는 용기가 있었다.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우리는 어떤 것에 이런 배팅을 해 볼 수 있을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우리가 무엇을 하길 바라실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는 잠수함을 타고 심해로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이라는 잠수함은 내려가기 전에는 찌그러져 터질지 어떨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잠수함을 타면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과 새 창조라는 종점까지 간다는 것이다.
포커스는 자연히 안맞았고 그는 분노와 함께 뒤돌아 보았다.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분명 그 내두름의 의미는 “한 시도 나와 함께 깨어있지 못함”을 한탄하는 누군가와 동일하게 비춰졌고 어느 산에서 피땀을 흘려가며 기도했던 유대인이 보였다. 물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일치되어 관통되는, 일이관지의 경험이었다.
어느 날은, 무릎을 꿇고 감독님을 보좌하고 있었다. 그리고 감독께서는 물건의 위치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치워!”라고 말한 후 의자에 발길질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정확히 인지가 되었다. 감독님은 나의 주인과 다름없었고 이것이 명확한 관계 정립이었다. 매번 ”나의 주님이시며 주의 종입니다“이라고 찬양하고 부르지만 그 때가 되어서야 명확한 ‘그 분과 나와의 차이’를 인지했고 그 관계 정립은 직업 세계를 통해서 명시되었다.
처음 타투에 매력을 느낀 것은 열아홉 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기 선교로 튀르키예에서 11개월간 살고 있던 때였다. 선교지로 수련회를 온 유럽의 학생들은 매우 자유로워 보였고 무엇보다 몸의 여러 군데에 새겨져 있는 타투가 내 눈에는 예뻐 보였다. 그때부터 문신에 관한 관심이 생겼다. 돌아보면 내가 문신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존감 회복이었던 것 같다.
당시 대학생이던 내 인생에 내가 없는 것 같았다. 원하는 학과에 지원해 공부하는데도 내 안에 열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즐거움은 갈수록 사라져만 갔다. 많은 기독 청년들이 갖고 있는 고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십여 년 남짓 살아오는 동안 나에게 내 인생의 결정권이 없다고 느꼈고 내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그저 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사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환경적인 측면에서 대해서 이야기하면 중독성 물질에 관대한 문화를 가진 나라일수록, 중독 문제가 있는 부모와 함께 지낼수록 상대적으로 중독 문제를 경험하기 쉽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환경적 요인 중에서 개인이 경험한 양육환경은 중독성 사고와 좀 더 깊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방어기제는 스스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활용된다. 즉,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경우처럼 개인이 자의적으로 통제할 수 없고 자아가 붕괴될 수 있는 위협적인 상황은 개인에게 일종의 외상(트라우마)으로 다가올 수 있다. 진단적 기준에서 트라우마란 큰 사고나 자연재해 등 심각한 사건을 겪으면서 경험하는 정신적 어려움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러한 외상 사건을 경험한 개인에게 사건과 관련한 특정 반응이 지속되는 경우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한다.